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막스 베버 (문단 편집) == 여담 == * '좌파의 마르크스, 우파의 막스 베버'라고 대립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도식은 후대에 왜곡되어 만들어진 해석일 뿐이다. 사실 베버는 현대 우파의 기준에서 보면 상당히 좌파적 시각을 가졌고, 우파가 제일 자주 인용하는 사회학자는 [[에밀 뒤르켐]]이다. 사실 [[에밀 뒤르켐]]도 우파라고 보긴 어려운 사람이라, 차라리 우파 쪽에선 사회학자가 아니라 경제학자인 [[슘페터]]를 끌고 오는게 나을 지경이다.[* 재미있게도 슘페터는 보수 경제학자로 통함에도 사회 분석에서 베버의 이론과 매우 유사한 논리를 전개했다. --이것도 베버가 우파로 잘못 알려지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양자는 추구하는 방향이 완전히 달랐다. 오늘날 베버 사상이 완전히 잘못 해석되어 퍼진 낭설들의 경우 오히려 슘페터의 사상과 맞아떨어진다.] 또한 [[카를 마르크스]]가 런던에서 사망(1883년)할 당시 막스 베버는 대학생이었으므로 직접 학자로서 두 사람이 마주칠 일이 없었다. 베버는 이후에도 마르크스의 연구를 어디까지나 학문상 연구하고 비판하는, 사회학자나 철학자로서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막스베버는 "마르크스와 니체를 부정하는 학자는 정직하지 못한 학자"라고 이야기를 한 바 있으며, 베버 본인도 당대부터 이미 좌파로 분류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마르크스를 무조건적으로 인정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닌 비판적 계승에 가깝다. 정치 활동을 했을 때도 [[사회자유주의|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결합한 노선]]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 대한민국 교육과정에는 [[사회 문화]], [[생활과 윤리]], 비문학 영역 등에서 잘 다루고 있다. 사회문화에서는 계급론으로 소개되고 있고 생활과 윤리에서는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이론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다소 비중이 적은 단원이라 그런지 막스 베버를 그저 금욕주의 정신이나 해석한 한낱 경제학자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 그가 현대에 미친 지대한 영향과 그의 이론 체계는 비중있게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막스 배버를 대학교에서 접하게 된다면 그의 위상에 놀라게 된다. 사실 문과는 대학 과정에서 베버를 피하기 쉽지 않다. * 주의해야 할 것은, 베버는 당초 '''기능론자가 아니다.''' 당장 '사회란 것은 실재하지 않는다', '개인의 행동과 동기가 중요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사회 각 부분은 전체적인 기능을 위해 존재한다'라는 사상의 대변자일 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와 베버를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비교하여 설명하다 보니 '마르크스=갈등론, 베버=기능론' 식으로 어설프게 엮어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베버의 '계층론'이 마르크스의 '계급론'과 대조점이 있기는 해도, 그렇다고 해서 계층론과 기능론이 같은 맥락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사회문화 시간에도 베버를 기능론자로는 분류하지 않는다.''' 거시적 사회이론에 속하는 기능론/갈등론과는 달리, 베버의 행위이론은 미시적 사회이론에 속하기 때문. 결국 '베버=기능론' 인식은 잘못된 지식이 기형적으로 퍼져 있다는 반증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현상 역시 베버의 사상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집단의 인식이란 집단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과정이 아니라 영향력을 지닌 소수의 의도에 의해 주도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 [[카를 마르크스]]를 흔히 '막스(맑스)'라고 줄여부르는 것 때문에, 마르크스와는 상반된 성향과 이론을 지녔음에도 '''이름에 '막스'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빨갱이]] 취급을 당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종종 생긴다. 유명한 야사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같은 막스 베버의 저서를 읽다가 '너 맑스 책 가지고 있으니 빨갱이지?'라며 잡아가는 것. 도시전설로 치부하는 의견도 있긴 한데 [[도시전설]]이라 하기엔 실제 경험담이 너무 많다. 실제로 70~80년대 군사 정권의 독재 도구로는 물론이고 '''심지어 21세기에도 현재진행형'''이다.[[http://v.media.daum.net/v/2015053014564513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506061300211|#]] 2014년의 일인데, 1988년~2004년에 존속했던 공안문제연구소에서 2001년에 [[기무사]]의 의뢰를 받아 찬양·동조 서적으로 지정했던 것 때문이었다.[[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81217|#]] * 막스 베버의 형제들이 독일 현대 학계ㆍ정계의 먼치킨이라 할 수 있다. 막스 베버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동생이 그 유명한 《공업입지론》의 저자 '알프레트 베버(1868~1958)'이다. 막내 동생 '칼 베버'는 독일 근현대를 관통하는 유명한 사법행정관료였다. 막스 베버는 어머니의 경건한 삶을 그대로 따랐지만, 동생들은 달랐다. 알프레트 베버는 형과는 정반대로 세속적인 학풍을 따랐고, 카를 베버 역시 현실 법률과 관련된 일을 맡아 했다. * 막스 베버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의 박물관이 일요일에 휴관하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아, 이후 미국을 프로테스탄스 정신의 모범으로 숭상했다는 일화가 있다. 정작 동시대 [[앰브로스 비어스|미국 작가 중 한 명]]은 당시 미국 사회를 "월요일이란 프로테스탄트 국가에서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다음 날"이라 풍자한 바 있다. * 1905년에 러시아에서 최초의 혁명이 일어났을 때 러시아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러시아어]]를 배웠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47&aid=000225314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